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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하는 믿음


성모 공경의 참된 근거는 그분의 순명과 믿음에 있다.
대비(大妃)가 왕을 낳았다는 이유에서 공경을 받듯이 성모 마리아도 단지 구세주를 낳은 분
이기 때문에 공경을 받는 것이 아니다. 성모 마리아가 공경을 받는 이유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이 실현되는 데에 꼭 필요한 인간 편에서의 순종과 신앙을 실현하셨다는
데에 있다. 비유로 얘기하면,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 말씀이라는 씨앗이 싹트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순종과 신앙으로 가장 좋은 토양을 제공하였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하는 순간만이 아니라 일생 동안 신뢰와 순종의 삶을 살았다.
예수께서 열두 살 되던 해에 가족 모두와 함께 예루살렘에 순례를 가신 적이 있었다.
가족들 모두 순례를 마치고 고향을 향해길을 떠났지만, 예수께서는 홀로 예루살렘에 떨어져
남아 계셨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마리아와 요셉은 아들을 찾아 나섰고 고생 끝에
사흘 만에 성전에서 학자들과 토론하시는 예수를 찾게 되었다.

어머니는 부모를 애타게 한 아들을 나무란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루카 2,48).
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
예수께서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가족의 유대부다 우선한다고 응답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루카 2,50).

여기서 마리아는 루카 복음 2장 19절이 전하는, 예수 탄생 직후 목자들의 방문을 받고서
취한 태도("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새겨 곰곰이 생각했다")를 반복한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 모두를 이해하지는 못하였다.
이렇게 볼 때 마리아 역시 신앙의 나그넷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마리아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즉 인간은 하느님의 계획을 투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뛰어넘으시는 분, '우리 마음보다 더 크신 분'(1요한
3,20)이시기 때문에 인간은 궁극적으로 그분의 뜻과 계획을 낱낱이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마리아는 예수의 반대자들과는 달리, 이해할 수 없다는 구실로 예수께서 하신 말씀
을 배척하지 않고, 마음속에 새겨 둠으로써 큰 신뢰의 태도를 보인다.
바로 이 점이 마리아와 예수 사이에 단순한 혈연 관계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깊은 유대관계
를 가능하게 한다.

이해를 넘어서 신뢰하는 마리아의 믿음은 또 한 번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드러난다.
갈릴래아에 있는 카나라는 동네에서 열린 혼인 잔치에 예수와 제자들 그리고 예수의 어머니
가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지는 난감한 사태가 발생했는데,
마리아는 이를 알고 예수께 도움을 요청한다.

어찌된 일인지 예수께서는 냉랭한 느낌이 드는 답변을 하신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
마리아는 아들의 의향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아들을 존중하고 신뢰한다.
이것은 마리아가 시중드는 사람들에게이렇게 이르신 말씀에서 드러난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예수께서는 그 집안에 있는 물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우게 하신 다음에 그것을 퍼다
잔치 책임자에게 가져다주게 하시는데, 그 사이에 물이 이미 포도주로 변해 있었다.

마리아는 아들의 '냉정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계속 신뢰하였고,
이것이 기적의 실마리가 되었다. 공관 복음서에서도 이와 흡사한 장면을 볼 수 있다(마르 7,
24-33) 시로페니키아 출신의 이방인 여인 한 사람이 예수께 자신의 딸을 치유해 달라고 청하
자 예수께서는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냉정하게 대답하신다.
하지만 그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예수께 다시 간청한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 여인의 끈질긴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간청대로 딸을 낫게 하신다.
마리아도 바로 이런 믿음의 소유자로서 다른 이들을 위해 예수께 도움을 간청하였고,
예수의 주도하에 이 간청은 기적으로 실현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마리아의 중개 역할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 중개는 어머니의 이름으로
아들 예수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신뢰하며 그에게 간청하는 것(기도)이다.

어쩌면 성모 마리아의 이런 신뢰와 순종의 태도는 늘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예수의 모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특히 마지막 순간에
당신 죽음을 받아들이시기 위해서 이해보다는 신뢰로써아버지 하느님께 다가가셔야 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하느님 뜻으로 알고 받아들이셨지만(루카 22,42),
그것이 너무 괴롭기에 하느님께 질문을 던지신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하지만 그분의 마지막 말씀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의탁의 말씀이었다.
"아버지 제 영을 당신 손에 맡기옵니다!"(루카 23,46)

우리의 주님께 이해를 넘어선 신뢰와 순종의 길을 걸으셨다면 그분을 따르는 우리 역시 그런
길을 걸울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길은 힘든 길이지만, 우리에 앞서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리고 그분을 따랐던 성인, 성녀들이 걸어가신 길이기에 우리 또한 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어둡고 험난한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고갯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 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어둡고 험난한 이 세월이
비슷한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과 위로를 줄 수 있기를.

- 베드로시안,「그런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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