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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1주일 (2013년 12월 1일 일요일)

cesil 2013.12.01 09:10 조회 수 : 6670

 

대림 제1주일 (2013년 12월 1일 일요일)

 

제1독서: 이사야서 2,1-5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이다.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제2독서: 로마서 13,11-14ㄱ

형제 여러분, 11 여러분은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이미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12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13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14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복음: 마태오복음 24,37-4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7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38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39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40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2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로시카 신부님의 대림 제1주일 성경묵상 (2013. 12. 1.)

 

대림: 최면 잠에서 깨어날 때

전례적으로 대림 시기는 역사의 끝에 예수님께서 왕으로 다스릴 때 오시는 하느님께 봉헌된다. 이 시기는 최후의 승리를 안고 “오시는 하느님”을 찬양한다. 대림 제1주일의 3 독서 모두는 우리에게 멀리 느껴지는 재림을 현재의 순간에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시간표를 채택할 것을 요구한다.

 

예상치 않은 구원의 환시

이사야 예언서의 제1독서(2,1-5)는 오늘 우리의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과 성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 대한 구원, 정의 평화의 아름답고 예상치 못한 환시를 묘사한다.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2-3절).

 

메시아 왕국에서 예언자는 보통 주님의 집을 권위의 자리 그리고 명백한 가르침의 원천으로 본다. 또한 계명은 백성들이 기꺼이 받아들이고, 영적인 지지로 유지하고, 모든 사람들의 평화에 이바지한다. 이 구절은 미카서 4,1-3에 그대로 나타난다. 미카서도 확실하지 않지만 이사야가 썼을 것이다. 이사야서는 대림 시기의 시작에 매우 적절하다. 우리가 다음 몇 주일 동안 진정 순례의 길을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의 아기 안에 계신 하느님을 예방하고 알아보기 위하여 주님께 향한 길고 지루한 여정을 시작한다. 하느님께서 사랑을 보여주시는 만큼 하느님을 알아볼 것이다.

 

우리의 최면 상태

로마서의 제2독서에서(로마 13,11-14) 이방인의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동틀 새로운 날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말한다. 11-12절에 바오로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처음에 신앙을 가졌을 때보다 구원이 더 가까이 왔기 때문에 잠에서 깰 시간이라고 권유한다. 밤은 지나고 새날이 가까이에 있다. 어둠의 짐은 던져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 잠의 그리스어는 “히프노스”이며(11) 이 본문에서 “최면된” 것의 완전한 개념을 바오로 자신에게 돌릴 수는 없지만, 우리가 죄악의 상태에 너무 익숙해져, 떨쳐버리거나 식별할 수 없는 우리 밖의 권력에 의해 최면상태가 된 것처럼, 죄악의 주문에 걸려 사는 것은 사실이다. 대림 시기에 다음과 같이 자문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체험하는 최면상태는 무엇인가?” 육체의 죄(14절)는 성적인 죄 뿐만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성령의 생명을 주는 일에 반대되는 모든 것이다. 야간의 행위를 계획하는 대신에 그들은 주님의 재림에 공언된 관심사와 일치하는 행위에 집중해야 한다.

 

노아의 시대

오늘의 마태오 복음에서(마태오 24,37-44) 노아의 동 시대 사람들은 홍수에 대비하지 못했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결혼하였다. 그들이 알았던 것과 같이, 세상의 종말을 지을 사건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일상에 사로잡혀서 홍수에 대해 경계를 하지 못했다. 예수님 재림의 “도착 예상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는 3 비유가 있다.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0-41). 앞에 사람은 왕국으로 데려가고 뒷사람은 파괴되도록 버려진 것을 뜻할 것이다.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반대의 경우를 맞을 것이다. 이 경우에 그들 사이의 구별은 사람의 아들의 오심에 대하여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다. 깨어있고 준비된 상태의 주제는 사람의 아들과 집을 뚫고 들어오는 도둑과의 격한 비교로 계속된다(42-44).

 

시간의 중요성

그리스도인의 대림 시기의 거행에는 시간이 중요하다. 이 시기에 우리는 신앙의 신비가 예수님의 재림까지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부활-승천 오순절과 재림 시기의 중간에 살고 있다. 시간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사건이 온다고 경고하셨다. 우리는 사람들이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 문을 잠그는 날까지 말했듯이 “우리는 모른다”고 얘기할 수 없다. 우리는 준비되고 깨어있어야 한다. 비상벨이 집주인을 깨우듯이 대림 시기는 삶 내내 잠에 빠질 위험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을 깨운다. 더 이상 어려운 질문을 하지 않고, 더 이상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의 답변을 듣지 않으면, 그때가 바로 일어날 때이다. 대림 시기는 우리에게 책임을 의식하고 완수하도록 촉구한다. 대림 시기는 우리에게 관계에 관심을 갖고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서 인간 생명의 선물을 축복하고, 기도할 시간을 갖도록 요구한다. 재림은 그렇게 우리에게 지금 여기에서 숨 쉬고 맥박을 치는 이유와 힘을 주는 사건이 된다.

 

예수님의 오심

대림 때문에 하느님이 변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대림은 하느님께서 예언자들과 도유한 사람들을 통하여 하신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는 우리의 열망과 기대를 심화시킨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지금 여기에서 구원약속을 보고 느끼고 싶은 우리의 탐욕스런 요구를 들어주시도록 기도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선포한다. 첫 번째 오심뿐만 아니라 첫 번째보다 훨씬 영광스러울 두 번째 오심을 선포한다. 첫 번째는 지속적인 고통의 표시 아래였지만 두 번째는 그와 반대로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왕관을 쓰시고 오실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 예수님과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고통이 필요하다.

 

수태의 계절

금년 대림 첫 주일 이브인 11월 27일 토요일 저녁에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성 베드로 성당에서 대림 제1주일 전야에 맞춰 “모든 태아 생명을 위한 밤”을 거행하였다. 교황성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기간은 세상에 태어나도록 불림을 받은 모든 인간 생명을 하느님께서 보호하시도록 청하고, 우리 부모에게서 받은 생명의 선물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기 좋은 때입니다.” “태아”는 우리의 일상 어휘에서 자주 쓰는 단어가 아니다. 명백하게 태어나지 않은 인간 생명을 가리키지만 그의 다른 뜻은 “약속하다,” “성장하다,” 그리고 “희망적이다”이다. 대림 시기에 들어가면서 우리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희망과 기대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스도께서 작고, 취약하고, 어머니의 보호와 보살핌이 필요한 태어나지 않은 아기로 처음에 우리에게 오셨다.

 

이 세계 기도의 밤을 개최하면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생명에 대한 희망과 약속에 초점을 맞추도록 요구한다. 또한 세계적으로 매년 약 5천만건의 낙태가 자행되는 슬픈 현실을 직시하도록 요구한다. 생명이 그저 버려진다.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 현실에 “최면 상태”가 된다. 우리는 자궁 안의 생명을 파괴하는 이유와 방법을 우리 삶을 바꾸고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이라고 정당화한다. 의식 없이 경험하는 인간 생명을 역행하는 최면 상태는 무엇인가? 연중 어느 때보다도 대림 시기는 수태의 계절이다. 하느님을 묵상하면서 신앙과 생명의 의미에 관한 희망을 쇄신해야 한다. 대림 시기의 시작에 거행하는 “태아 생명”을 위한 이 기도회의 시간은 모든 인간 생명이 대표하는 하느님의 위대한 선물을 생각나게 하는 행복한 일치이다.

 

평가하기

메시아에 대한 바람과 기다림의 이 거룩한 시기를 시작하면서 인간 생명에 대한 평가를 하여, 일상에 얽매여서 홍수에 대한 경계를 하지 못한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되지 말자. 대림은 우리에게 더 이상 평소의 업무가 아님을 깨우친다. 새로운 무엇이 발생하려고 한다. 대림 시기에 우리 모두 기도하자. 하느님, 생명의 아버지, 생명을 거슬러 죄지은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 어머니 자궁에 우리를 짜 넣으신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예수님의 아버지, 모든 아기를 수태 순간부터 물리적 공격으로부터 보호하소서.

 

시온의 딸의 자궁에서 인간이 되신 때에 모든 인간 생명을 고귀하게 하신 예수님, 하느님의 아드님, 마리아의 아드님이시여, 저희의 마음을 밝히시어 모든 인간 생명의 존귀함을 초기부터 볼 수 있도록 하소서. 고통 받고, 병들고, 부서지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신 나자렛의 예수님, 태어나지 못한 아기들의 부모들에게 힘을 주시어 그들에게 맡겨진 아기들을 귀하에 여길 수 있도록 하소서. 죄인들을 매일 용서하시는 주님, 무지한 인간 생명을 역행한 사람들을 회개와 용서로 이끄시고, 풍성한 은총으로 치유하여 주소서. 이스라엘의 하느님,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갈망을 키워주시고, 우리의 사랑이 증가하도록 힘을 주시어, 재림의 새벽에 우리가 그분과 함께 기뻐하고 그분의 진리를 환영하게 하소서.

 

재림의 기대

이 시기에 예루살렘의 성 키릴로의 말을 잊지 말자. “그분의 첫 번째 오심에 그분은 강보에 싸여 말구유에 놓이셨으나 두 번째 오심에는 빛이 그분의 옷일 것이다. 첫 오심에 십자가의 수치를 상관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셨으나 두 번째 오심에 그분은 천사의 군대에 싸여 영광스럽게 오실 것이다. 첫 오심에 멈추지 말고 두 번째 오심을 기대하자. 우리는 그분의 첫 오심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 되시도다’라는 말을 외치며 그분을 환영하였으나 그분의 두 번째 오심에도 같은 말로 환영할 것이다. 나가서 주님과 천사를 맞고 그분 앞에 엎드리어 외칠 것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 되시도다.’”

 

* * *

토마스 로시카 신부님은 캐나다 소금과 빛 가톨릭 미디어 재단과 텔레비전 네트워크의 CEO이며, 교황청 사회홍보 평의회의 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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